총으로 난사해 62명을 살해

2011년까지 기네스북에 등재된 세계 최악의 연속살인

이 사건이 국내에서 일어났었다.



사건은 이랬다.


청와대 경호에서 좌천되어 경남 의령군 궁류지서에 있던 우범곤 순경.

해병대에서 복무 중 특등사수였던 우범곤은 술만 마시면 포악한 성격을 드러내던 문제많은 경찰이었다.




그러던 1982년 4월 26일, 동거녀 전양과 사소한 다툼을 벌이고 전양을 폭행한 우순경. 이 문제로 동네사람들과 전양 남동생에게 질타를 받게되고 결국 일을 벌이게 된다.


그는 바로 예비군 무기고에 보관되어 있던 M1카빈 2자루,실탄 180발,수류탄 7개 등을 탈취했다.


밤 9시 40분

우순경은 마침 앞을 지나던 타지역 남자에게 총을 쏜 것을 시작으로 면 토곡리 재래시장으로 달려가 총을 난사하여 장을 보러온 마을주민 3명을 살해했다.


밤 9시 45분

마을의 통신을 차단하기 위해 궁류우체국으로 가서 교환원 여성 2명과 숙직 중이던 집배원 1명을 살해하였다.그러나 교환원이 숨지기 직전, 마을 이장 집의 행정전화와 의령우체국 간의 코드를 연결했던 덕분에 주민에 의해 신고(10:34)가 가능했다.


(당시는 전화교환원이 중간에 송신자와 수신자를 직접 선으로 연결해주어야 전화통화가 가능했다. 그렇기 때문에 전화교환원이 없다면 전화통화가 되지 않았다.)


밤 10시

압곡리 매실부락으로 가서 10여 분간 총기를 마구 난사하였고, 주민 6명을 살해했다. (전양과 그녀의 가족 등)


밤 10시 10분

그는 운계리 시장으로 달려가 주민 7명을 살해했다.


밤 10시 50분

그는 상갓집에 난입하여 문상객들과 어울려 10여 분간 함께 술을 마신 뒤 갑자기 총을 난사하여 12명을 살해하였다. 이후 그는 불이 켜진 집을 찾아다니며 총을 난사하여, 이곳에서만 무려 23명을 살해했다.


다음 날 27일 새벽 5시 35분

그는 평촌리 마을에 다시 나타나 한 민가에 침입했다. 그는 일가족 5명을 깨운 뒤 갖고 있던 수류탄 2발을 한꺼번에 터뜨렸고, 그 자리에서 우범곤 본인을 포함해 4명이 폭사했다.


결국 본인의 사망으로 이 사건이 종료된 셈이다.


그리고 범행 이후 경찰의 무능한 대응이 질타를 받게 된다.


근무지를 무단이탈해 술을 마시고 돌아오던 궁류지서장 허창순 경사 일행은 10:50경 길에서 주민 신고를 받고 도피했다.


의령서에서 신고를 받고 경무과장 신현기와 보안과장 김영석 휘하 전투경찰 30명이 12:00경 도착했으나 피격이 두려운 나머지 마을 초입 다리 밑 등 곳곳에 숨어 있었다. 후에 경찰은 이를 매복이었다고 변명했다.


역시 근무지를 무단이탈해 있던 당시 관할 책임자인 의령서장 최재윤 경정은 보고를 받고 01:20시에 복귀하였으나 두려움에 빠진 나머지 곧바로 궁류지서로 도망쳐 안에만 틀어박혔다.




이 사건을 막았어야 할 경찰이 총을 든 범인이 무서워서 나서지 못하고 각자 숨은 상황.


만약 의령서장이 지서에서 마을 스피커로 경보를 발령하고 사이렌을 울리거나, 또는 예비군을 동원하거나 의령서 휘하 인근 지서에 경찰 지원을 지시했다면 피해를 조금 더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의령경찰서 서장 최재윤 경정,궁류지서장 허창순경사,차석 김진우경장, 안승섭 순경등 4명이 직무유기 혐의로 구속되었다.



그리고 2년 후 이 사건의 모티브를 얻어 미국 콜로라도에서 'Bum Kon'이라는 하드코어 펑크 밴드가 결성되었다. 그런데 남한과 북한을 헷갈린듯 하다.




이 사건은 2011년 노르웨이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하기전까지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