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후반 인터넷의 붐으로 많은 이른바 닷컴 기업들인 웹사이트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당시는 PC통신에서 인터넷으로 사용자들의 이동이 가속화된 때였고 정부에서도 IT강국으로 자리잡기 위해 여러 정책들도 시행되던 때였다. 그렇게 생긴 웹사이트들은 많이 생겼으나 시대가 급변한 초기인 만큼 각 웹사이트들은 이렇다할 수익모델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때 였다. 지금이야 어느정도 광고수입으로 지출되는 비용을 일부 해결할 수 있었겠지만 당시는 그렇지도 못했다. 


그런 힘든 시기를 벗어나고자 웹사이트들이 선택한 것은 유료화 정책이었다. 지금에서야 이들이 바보같은 선택을 했다고 웃을지는 모를 일이지만 당시로써는 역사가 짧은 닷컴 기업의 특성상 참고할 수 있는 누적된 데이터가 없었으므로 그들을 탓할 수 만은 없다. 그들의 실패사례는 다른 기업들의 많은 참고사례가 되어 지금도 견고하게 성장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된 것 만은 확실하다.


어떤 웹사이트들이 성급한 유료화 정책으로 역사의 뒤안길을 걸었을까?



프리챌



1999년 전 삼성물산 직원이었던 전제완에 의해 설립된 프리챌은 동아리 커뮤니티 기능으로 단숨에 가입자 1000만명, 커뮤니티 수 100만 개에 달하는 포털이 되었다. Dau카페보다도 커뮤니티 규모가 컸고 야후를 위협할 정도였던 프리챌은 2002년 유료화 정책을 내놓는다.


다만 이 유료화 정책은 모든 사용자에게 요금을 부담시키겠다는 것이 아닌 커뮤니티 운영자에게만 월정액 3,300원의 이용 금액을 받겠다는 것이었다. 이로써 운영자는 최대 5개의 커뮤니티를 운영하게 될 수 있었다. 이에 반발한 커뮤니티 운영자들은 다른 사이트로 커뮤니티 이사를 시도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다음의 카페와 싸이월드의 클럽으로 많은 이탈이 가속되었다.


이후 2003년 솔본(전 새롬기술)에 인수되어 뒤늦게 유료화를 폐지했으나 이미 이용자들이 대다수 떠난 뒤였다. 프리챌은 재기를 위해 온라인게임, 파일굥유 서비스등을 시작했으나 결국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2013년 결국 프리챌은 없어지게 된다.





블로그인



블로그인은 2013년에 생긴 국내 최초의 서비스형 블로그이며, 당시 블로그라는 단어가 생소했던 만큼 마땅한 경쟁자도 없어 꽤 많은 블로그 사용자들이 블로인을 사용했다. 그렇게 압도적인 점유율을 가지고 있었으나 결국 이 블로그인도 유료화를 단행하게 된다.


수익모델은 싸이월드의 도토리와 유사하게 '구슬'이라는 것은 판매하여 블로그 스킨을 꾸미고 업로드 용량의 추가등을 할 수 있게 하였다. 하지만 결과는 싸이월드와 다르게 사용자들의 이탈을 불러일으킴으로써 결국 이글루스나 네이버 블로그 등이 수혜를 입게 되었다. 이 블로그인은 다른 회사에 인수되지 못한 채 사용자들의 자발적인 기부로 명맥을 유지하게 되는 특이한 운영방식을 가지게 되었다. 그나마도 2016년 이후로는 서비스가 안되고 있다.



디비딕닷컴



2000년 한겨레에서 만든 디비딕닷컴은 사용자가 질문을 올리고 사용자가 답변을 하는 현재 네이버 지식인과 같은 사이트였고 사실 이 디비딕닷컴이 네이버 지식인보다도 원조격이다. 100여개의 카테고리에서 하루 수천건의 질문과 답변이 올라오면서 급성장했고 이 DB를 기반으로 '너 그거 아니?'라는 책도 냈다.


하지만 이 디비딕닷컴 역시 유료화를 선언하면서 일부 질문이나 답변을 유료료 열람 가능하게 하였다. 결국 사용자들은 네이버 지식인으로 대거 이동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이 디비딕닷컴은 결국 엠파스에 인수되었다.





다음메일 


2000년 초반 한메일의 붐을 타고 다음은 1위 포털사업자였다. 한메일이 얼마나 대단했는가 하면 인터넷을 사용하는 모든 국민이 한메일 주소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너 이메일 주소가 뭐야?' 라는 질문 대신에 '너 한메일 주소가 뭐야?' 라는 질문이 오가기도 할 정도로 말이다. 물론 당시에는 제대로된 SNS나 메신저가 없었으니 이메일이 더 중요했던 시기기도 했다.


2002년 다음은 스팸메일을 잡겠다는 명목으로 한메일 발신자에게 천 통 이상의 메일을 발송시 1통당 10원의 요금을 받겠다는 유료화 정책을 시행했다. 늘어나는 서버 비용을 감당하기도 힘든판에 스팸메일이 난무하니 스팸메일만 없어져도 서버 유지 부담이 덜 할 것이라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일반 사용자에게 요금을 부담하는 것이 아닌 대량 메일을 발신하는 업체에 요금을 전가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일반 사용자에게는 더 클린한 메일을 이용할 수 있는 계기도 되었다. 당시 메일서비스에서 제공하던 기본 용량이 얼마 되지 않아 안그래도 저장 공간이 부족한데 사용자 입장에서 나쁠 것은 없었다. 하지만 부작용은 다른 곳에서 나타났다. 대량 메일을 발송해야 하는 다른 웹사이트들에서 가입시 필요한 메일 주소를 다른 주소로 바꾸도록 유도하고 가입시 아예 한메일 주소는 넣지 못하도록 한 것. 이에 울며 겨자먹기로 다른 메일 주소를 써야했던 사용자들은 결국 다른 메일서비스에 하나둘씩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결국 다음은 이 '온라인 우표제'라는 메일 유료화 정책을 접었지만 이미 한메일은 1위 자리를 잃은 뒤였다. 이 경우는 사용자들의 자발적인 이탈이 아닌 다른 업체들의 견제에 의한 것으로 상당히 이례적인 사례다. 물론 다음은 1위 포털의 자리를 잃긴 했지만 아직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는 않았다.


재미있는 것은 이 다음 스크린샷은 2000년 서비스 당시의 모습을 캡쳐한 것인데 배너광고에 프리챌을 광고하고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네이버에 다음 광고 배너가 붙어있는 셈인 것이다.